한주식 회장의 '매운고추와 덜 매운고추'
※ 다음은 한주식 회장님이 직원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글입니다.
고추는 매운 음식의 대명사 입니다. 따라서 맵고, 덜 맵고를 떠나서 고추는 응당 매운 음식이고, 당연히 매워야 고추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근래에 들어 맵지 않은(덜 매운) 고추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었지만, 과거에는 당연히 고추는 매워야 하고, 맵지 않은 것은 고추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매운 고추를 선호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소금이 당연히 짜야 하고, 또 설탕이 달아야 하는 것처럼 고추는 당연하게 매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이 다소 윤택해 짐에 따라 짜지 않고, 달지 않은 것을 찾게 되다보니, 맵지 않은 것 역시 찾게 되었나 봅니다. 소금이지만 덜 짜고, 설탕이지만 덜 단것처럼, 고추지만 덜 매운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고추 고유의 맛과 향, 그리고 아삭함을 즐기지만, 고추가 고추일 수 있는 정체성(?)인 매운맛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맛은 달고, 짜고, 시고, 쓴 맛의 수용체가 혀에 존재하여 각 맛의 성분을 느끼고 그 느낌을 뇌에 전달하여 맛을 느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운 맛은 그 수용체가 없습니다. 따라서 맵다라는 느낌은 맛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매운 성분은 매운 맛의 수용체가 없어서 통각(통증을 느끼는 감각)을 자극하고 고통을 느끼면 사람은 체내에 엔돌핀을 분비하여 흥분과 쾌감을 증가시켜 통증을 완화하고자 하는 자기보호 본능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매운맛(?)은 중독성이 있는 것입니다. 자꾸 더 큰 자극으로써 무뎌지는 쾌감을 증대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매운 고추와 안 매운 고추 중에 그 효용성이 높은 고추는 무엇일까요?
고추는 매워야 한다는 관습적 사고와 매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고추의 효과를 생각했을때 매운고추가 효용성이 높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고 합니다.
또다른 문제를 같이 살펴볼까요?
린다라는 31세 미혼 여성은 직설적이고 아주 똑똑합니다. 철학을 전공했으며, 학생때 차별과 사회정의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반핵 시위에도 참여했습니다.
이때 린다가 은행창구 직원일 확률과,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창구 직원일 확률 중 어느 경우가 높을까요?
이 문제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저서에 수록된 내용으로 일반적 대중의 선입견에 입각한 판단력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즉, 린다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 오히려 판단력을 헤치는 선입견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린다의 실체적 상황이 은행창구 여직원의 평범하고 순종적인 이미지와 반대되고, 여성운동을 할 것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창구직원’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여성운동을 하는 은행창구 직원은 모든 은행창구 직원의 소집합일 뿐입니다. 따라서 수학적 확률을 물어보는 문제의 정답은 그냥 은행창구 직원일 확률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매운 고추와 맵지 않은 고추에 대한 질문은 사용자의 분포를 파악해야 합니다. 매운고추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켑사이신의 통각 자극에 익숙한 사람들이며, 맵지 않은 고추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단지 맛의 선호도의 차이로 매운 것과 맵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매운 것은 아예 먹지를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매운 것을 좋아하는 그룹은 맵지 않은 것 역시 대체재로 먹을 수 있는 반면, 맵지 않은 것을 좋아하는 그룹은 매운 것 자체를 먹지 못하고, 맵지 않은 고추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고추를 좋아한다는 전체 집합에서 매운 고추를 좋아한다는 소집합에 불과하며 이에 따라 맵지 않은 고추의 효용성이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통과 관습, 관례, 습관에 따라 통상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이 기준이 선입견으로 작용하여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고추의 비유는 갑자기 생각난 일상적인 먹을거리중에 찾은 별것 아닌 비유이지만, 이러한 현상에 대한 연구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까지 했다고 한다면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관습에 얽매어 고정관념을 기저에 두고 판단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만약 그렇다면 과연 그 판단이 온전히 내 판단인지, 나도 모르게 기저에 존재한 선입견에 좌우된 판단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객관적 시선에서 면밀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나 사업상 중요한 결정이나 판단이라면 더욱더 냉철한 시선이 필요할 것입니다.